성좌의서약 5화 무료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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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파켐

로마의 겨울비는 소리 없이 내렸다.

운학은 쇠 새의 속을 빌려 열두 시간을 날았다. 이륙할 때 기감이 수백 명의 불안을 한꺼번에 받아 내는 바람에 팔걸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팔걸이에는 다섯 손가락 자국이 얕게 남았다. 그는 담요를 덮어 그것을 가렸다. 착륙할 때는 옆자리 노부인이 멀미약을 건넸다. 약은 듣지 않았으나 호의는 들었다.

공항에는 레아가 나와 있었다. 수녀복 차림이었다. 회색 코트를 입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무장한 사람처럼 보였다.

“비행은 어떠셨어요.”

“새의 속을 빌리는 일은 두 번 하고 싶지 않습니다.”

“돌아갈 때도 새예요. 걸어가시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레아는 이미 돌아서 있었다.

“따라오세요. 늦었어요.”

차는 성벽을 끼고 돌아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순례자의 줄이 광장 쪽으로 강처럼 흐르고 있었고, 차는 그 강을 거슬러 올라 간판 하나 앞에 섰다. 세탁소였다. 유리문 안쪽에 다림질판이 보였다. 다려진 옷은 한 벌도 걸려 있지 않았다.

세탁소 뒷벽의 철문은 아래로만 이어졌다.

계단은 세 번 꺾였다. 꺾일 때마다 공기가 한 겹씩 갈아입었다. 첫 꺾임에서는 세제 냄새가 났다. 둘째 꺾임에서는 돌 냄새—이천 년 묵은 응회암이 빗물을 머금은 냄새가 났다. 셋째 꺾임을 지나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걸러진 공기였다. 냄새의 없음이 곧 이 깊이의 신분증이었다.

빛은 인색했다. 복도의 조명은 필요한 곳에만 정확히 떨어졌고, 벽에 남은 옛 프레스코의 성인들은 일부러 어둠 속에 모셔져 있었다. 보존을 위해서인지 보안을 위해서인지. 아마 이곳에서는 그 둘이 같은 말일 것이었다.

보안은 세 겹이었다. 첫 문에 레아는 손바닥을 댔다. 둘째 문에는 눈을 댔다. 셋째 문 앞에서는 아무것도 대지 않고 그냥 걸었다. 문 위의 렌즈가 두 사람의 걸음을 오래 바라보았다.

“보행 분석이에요. 걸음걸이는 위조가 제일 어렵거든요. 몸에 밴 건 못 속이니까.”

“몸에 밴 것은 못 속인다.”

운학이 따라 말했다.

“당신들도 아는 이치였군요.”

레아가 그를 흘긋 보았다. 문이 열렸다.

지하 성당을 개조한 방이었다. 제대가 있던 자리에 반원형 상황판이 서 있었다. 화면 여섯. 대륙 셋. 붉은 점들이 열병처럼 번져 있었다. 그리고 천장—궁륭에는 옛 별자리 프레스코가 금빛으로 남아, 화면의 붉은 점들과 위아래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땅의 불과 하늘의 별이 한 방에서 대치 중이었다.

사람은 여덟이었다. 아무도 운학을 신기해하지 않았다. 신기해하지 않도록 훈련된 얼굴들이었다.

“파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레아가 말했다.

“공식적으로, 당신은 지금 아무 데도 있지 않아요.”

신경전은 브리핑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데려오는 데 반대했다는 말부터 해 두죠. 전 돌려 말하는 훈련을 받았지만 그걸 싫어해요.”

레아는 상황판 앞에서 팔짱을 꼈다.

“우리에겐 전파망원경 여섯 기, 광학 관측소 네 곳, 궤도 위성 두 기가 있어요. 당신에겐 뭐가 있죠? 대나무 통 하나와 백이십 년 묵은 직감?”

“백이십일 년입니다.”

“정정 고마워요. 요지는 이겁니다. 여기선 검증 가능한 것만 데이터로 칩니다. 별의 뜻을 읽는다는 건 제 분야에선 점성술이고, 점성술은 교회가 이천 년 싸워 온 상대예요. 전 천체물리로 학위를 받았어요. 별이 뭘 ‘말한다’고 믿는 순간 과학자는 끝납니다.”

“별은 말하지 않습니다.”

운학은 궁륭의 금빛 별들을 올려다보며 답했다.

“박자가 있을 뿐. 나는 뜻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받아 적었을 뿐.”

“받아쓰기라.”

레아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를 달렸다. 중앙 화면에 스물네 개의 파형이 바둑판처럼 떴다.

“마침 잘됐네요. 받아쓰기 시험을 치죠. 스물세 개는 우리 관측소들이 잡은 원본 신호. 하나는 흑요성회가 민간 관측망에 심은 위조입니다. 우리 분석팀이 그 하나를 찾는 데 엿새 걸렸어요. 스펙트럼 분해에 노이즈 대조까지 돌려서.”

방 안의 여덟이 하던 일을 멈췄다. 구경꾼의 눈이 아니었다. 심사관의 눈이었다.

“어느 겁니까?”

“파형은 읽을 줄 모릅니다.”

운학이 말했다.

“별이 우는 대로 보여 주십시오.”

레아가 단추를 눌렀다. 스물네 개의 물결이 일제히 빛의 명멸로 바뀌었다. 밤하늘 스물네 조각이 화면 위에서 울기 시작했다. 장, 장, 장, 단. 장, 장, 장, 단.

운학은 눈을 반쯤 감았다. 손끝이 옆구리에서 장단을 받았다.

하나. 둘. 셋.

“열일곱째.”

침묵이 방을 채우는 데 삼 초가 걸렸다. 레아가 그 침묵을 깨는 데 다시 삼 초.

“……어떻게.”

“숨이 다릅니다.”

운학은 열일곱 번째 조각을 가리켰다.

“장과 장 사이의 틈. 원본은 들이쉬고 웁니다. 이것은 내쉬고 웁니다. 가락은 베꼈으나 숨은 베끼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지은 것은 반드시 제 숨을 닮는 법이라.”

“신호에 숨 같은 건 없어요. 광도 곡선의 상승 기울기가—”

레아는 말하다 말고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정답을 확인하는 엄지가 화면 위에서 아주 잠깐 멈춰 있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목소리는 평정했으나, 팔짱은 풀려 있었다.

“……상승 기울기가 비대칭이군요. 원본은 느리게 밝아져서 빠르게 꺼지고, 위조는 그 반대. 우리 알고리즘은 진폭만 봤어요. 기울기의 방향은 안 봤고.”

“그것을 숨이라 부릅니다.”

“기울기라고 부를 거예요, 보고서엔.”

레아는 태블릿을 껐다. 그것이 그녀식의 항복이었다.

“……좋아요, 가스파르 형제. 운이었다고 하기엔 삼 초는 너무 짧네요. 당신의 그 받아쓰기, 검증은 나중에 따로 하죠. 지금은 써먹는 게 먼저니까.”

“시험은 통과입니까.”

“통과가 아니라 채용이에요. 더 나쁜 거죠.”

그녀는 상황판으로 돌아섰다.

“현황 브리핑.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으세요.”

지도가 확대되었다. 붉은 점들이 가까워졌다. 예루살렘 외곽. 발칸. 카프카스. 남아시아.

“위조 신호가 뿌려진 지 석 달. ‘종말의 별’은 신흥 교단 마흔 곳의 교리가 됐고, 오래된 종교들 안에서도 종말파가 살을 얻고 있어요. 저마다 제 경전에서 그 별을 찾아냈죠. 묵시록에서, 하디스에서, 칼키 예언에서. 흑요성회는 불씨를 만들지 않아요. 이미 있는 불씨마다 같은 바람을 불어넣을 뿐.”

“당신들이 막는 방도는.”

“폭로하고, 끊고, 막습니다. 위조의 출처를 폭로하고, 교단 사이의 돈줄을 끊고, 무기가 지나는 길목을 막고.”

레아는 그를 정면으로 보았다.

“미리 새겨 두세요. 여긴 군대가 아니에요. 파켐의 계율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정보로 막는다—총으로 막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건 이미 우리가 진 겁니다.”

운학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의를 담으면 흩어지는 힘을 지닌 자에게, 그보다 맞춤한 계율은 없었다. 그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질문 있으세요?”

“하나. 어째서 나입니까. 엿새가 걸리더라도 당신들은 결국 찾아내지 않습니까.”

레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심사관이 아닌 눈이었다.

“엿새 뒤엔 도시 하나가 재가 되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위조범은 기계를 속이는 법은 완성했어요. 기계가 아닌 눈이 필요해요. 같은 것을 배운 눈이.”

같은 것을 배운 눈. 운학은 소매 속 죽통의 무게를 느꼈다. 그녀는 제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고 있었다.

그때 상황판 구석에 새 창이 떴다. 당직 요원이 짧게 보고했고, 레아의 표정이 반 도 낮아졌다.

“실전 교재가 도착했네요. 여섯 시간 전, 아나톨리아 동부. 성 니콜라오스 기념 성당 방화. 사상자는 없어요. 방화범들은 흰옷을 입고 찬송을 부르며 불을 질렀답니다. 별이 명했다면서.”

화면에 현장 사진이 넘어갔다. 그을린 제대. 녹아 흘러 굳은 촛대. 연기가 핥고 간 벽.

그리고 그 벽에, 검댕 위를 손가락으로 훑어 그린 문양 하나.

별이었다. 여덟 갈래 빛살. 빛살마다 길고 짧음이 새겨져 있었다. 장단의 기록. 관성술의 기록법. 사문 바깥에서는 세상 누구도 쓰지 않는.

운학은 화면 앞으로 다가섰다. 죽통을 열 것도 없이 그의 손끝이 허공에 제 성도의 문양을 그렸다. 그리고 벽의 것과 겹쳤다.

등줄기로 서늘한 것이 지나갔다.

같았다. 빛살의 수도, 장단의 자리도. 다만 전부—뒤집혀 있었다. 좌우가.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거울에 비춘 글씨처럼.

“왜 그러세요.”

레아가 그의 옆얼굴을 살폈다.

“아는 문양이에요?”

“내 기록과 같습니다.”

운학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만 거울에 비친 쪽입니다.”

“거울상이라니, 그게 무슨 의미죠?”

운학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백 년 묵은 사문의 가르침 한 줄이 먼지를 털고 일어서고 있었다. 어린 그와 어린 사형이 나란히 꿇어앉아 외웠던, 그때는 뜻을 몰랐던 한 줄이.

하늘의 글을 바로 읽는 자는 그 뜻을 따르고—

거꾸로 읽는 자는, 하늘을 제 거울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