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의서약 3화 무료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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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동방에서 온 박사

늙은 사제의 이름은 최 안토니오였다. 그는 운학에게 이름을 묻는 대신 차를 물었고, 사제관의 좁은 응접실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찻잔에서 오르는 김이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대신 채웠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운학이었다.

“저 유리 그림의 별. 언제 적 것입니까.”

“그림은 백 년쯤 됐지요. 하지만 그림이 그린 별은,”

노사제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천 년 전 것입니다.”

“별이 무어라 하였다고 전해집니까.”

“말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 사람이 그 별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아니, 그들에겐 동쪽에서 서쪽으로 갔지요. 별이 한 아기 위에 멈출 때까지.”

운학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물 위에 형광등 불빛이 별처럼 떠 있었다.

“따라간 자들은 무엇을 얻었습니까.”

최 신부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노인의 침묵은 길었으나 비어 있지 않았다.

“성경은 그들이 ‘다른 길로 돌아갔다’고만 적습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얻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적지 않았어요. 저는 늘 그 대목이 좋았습니다. 얻은 것을 적지 않은 것이.”

“어째서.”

“적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별까지 동원할 일은 아니었겠지요.”

운학은 처음으로 이 노인을 바로 보았다. 도문(道門)의 늙은 스승들과 같은 화법이었다. 답을 주지 않고 답이 있는 방향으로 등불만 옮겨 놓는.

“진인께서는,”

최 신부가 물었다.

“그 별을 따라 산을 내려오셨습니까.”

“등선을 물리고 내려왔습니다.”

“아깝지 않으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운학은 정직하게 말했다.

“다만 하늘에 오르는 일은 언제고 다시 할 수 있으나, 하늘이 말을 거는 일은 드물 것 같았습니다.”

노사제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에서 낡은 책 한 권을 뽑아 왔다. 표지에 아무 장식이 없는 검은 책이었다.

“묵으실 곳이 없으시지요. 사제관 뒷방이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는 책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심심하실 때.”

운학은 그날 밤 뒷방에서 책의 첫 장 대신 뒤쪽 어딘가를 폈다. 습관이었다. 경전은 아무 데나 펴서 그날의 연(緣)을 읽는 법이다. 펼쳐진 곳의 첫 줄이 이러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는 오래 그 줄에 머물렀다. 한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도문의 첫 문장이 겹쳐 왔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말할 수 있는 도는 참 도가 아니다. 한쪽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하고, 한쪽은 말이 되는 순간 이미 그것이 아니라 한다. 정면으로 어긋나는 두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긋난 자리가 아프지 않았다.

그는 창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별이 울고 있었다. 장, 장, 장, 단. 말이 아닌 말. 말씀이되 말해지지 않는. 운학은 창턱에 손가락으로 장단을 받아 적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두 문장은 같은 산을 동쪽과 서쪽에서 오르는 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을 결론으로 삼지 않고 접어 두었다. 백이십일 년 수행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서둘러 얻은 답은 반드시 되물어야 할 빚이 된다는 것이었다.

몇 주가 흘렀다. 운학은 낮에는 성당 마당을 쓸고—빗자루질은 그의 몸에 밴 몇 안 되는 속세의 기술이었다—밤에는 별을 기록했다. 최 신부는 그에게 아무것도 권하지 않았다. 미사에 오라 하지 않았고, 책을 읽었느냐 묻지 않았다. 다만 저녁마다 차를 내었다.

그날 저녁, 차 대신 탁자에 종이 뭉치가 올라와 있었다. 복사물이었다. 한자가 세로로 흐르는 옛 문헌.

“로마에 있는 오랜 벗에게 부탁해 받았습니다.”

최 신부가 말했다.

“『한서(漢書)』 천문지. 그리고 이건 그 벗이 덧붙인 것.”

두 번째 뭉치는 서양 글자였다. 운학이 읽지 못하는 글이었으나, 그림은 읽을 수 있었다. 별자리 도면. 그리고 여백에 연필로 옮겨 적은 한글 주석. ―케플러, 1614. 목성-토성-화성 삼중회합 가설. 박사들의 별은 초신성이었나?

“이천 년 동안,”

노사제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그 별의 정체를 캐 왔습니다. 혜성이다, 행성들이 겹쳐 보인 것이다, 새로 태어난 별이다. 저마다 증거를 대지요.”

“수사(捜査)로군요.”

“예. 이천 년 묵은 미제 사건입니다.”

노인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진인께서는 어느 설이 맞다 보십니까.”

운학은 『한서』 복사물을 끌어당겼다. 손가락이 세로줄을 짚어 내려갔다. 원제(元帝) 연간. 객성이 어느 별자리에 나타나 칠십여 일 머물다. 그는 죽통에서 제 성도를 꺼내 나란히 놓았다. 한나라 사관이 적은 객성의 자리. 케플러가 셈한 회합의 자리. 그리고 그가 태백산에서 기록한 별의 자리.

세 자리가 달랐다.

“혜성은 꼬리를 끕니다. 이 별은 끌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씩 짚었다.

“행성이 겹친 것이라면 며칠이면 다시 갈라집니다. 이 별은 삼칠일이 지나도록 제자리에서 웁니다. 새로 태어난 별이라면 점점 흐려져야 하는데, 이 별은 흐려지는 대신—”

그는 말을 멈추었다.

“대신?”

“급해지고 있습니다. 우는 간격이.”

침묵이 앉았다. 최 신부는 복사물 위에 포개진 운학의 성도를, 거기 빼곡한 장단의 기록을 내려다보았다.

“혜성도, 회합도, 초신성도 아니라면,”

노인이 천천히 물었다.

“무엇이 남습니까.”

“하늘의 것이 아닌 것.”

운학이 말했다.

“혹은, 하늘 그 자체.”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모릅니다.”

운학은 성도를 접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압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종말의 별이라 부르며 우는 그 별은—간격이 다릅니다. 방송의 거울에서 보았습니다. 장이 둘, 단이 둘. 가락이 틀렸습니다.”

최 신부의 손이 찻잔 위에서 멎었다.

“틀렸다는 것은.”

“베낀 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원본을 보지 못하고 베낀 자가.”

노사제는 오래 침묵했다. 이번의 침묵은 무거웠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낮았다.

“진인. 로마의 그 벗이, 진인을 한번 만나고 싶어 합니다.”

세례 전야는 겨울의 초입이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성당 마당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입김이 하얗게 올랐다. 운학이 세례를 청한 것은 사흘 전이었고, 최 신부는 이유를 묻지 않고 다만 “대부는 제가 서지요” 하고 답했었다. 그러나 전야가 되자 노인은 뒤늦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도를 버리시는 겁니까.”

“버리다니요.”

운학은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물을 길으러 온 사람이 두레박을 버립니까.”

“그럼 저희의 세례는 진인께 두레박입니까.”

“두레박이 아니라,”

그는 잠시 말을 골랐다.

“우물을 하나 더 얻는 것입니다. 같은 수맥일지도 모르는.”

“같은 수맥이 아니면 어쩌시렵니까.”

“그럼 두 우물의 물맛을 다 아는 사람이 되겠지요.”

운학은 노인을 돌아보았다.

“신부님은 두렵지 않으십니까. 도사에게 물을 부으시는 것이.”

최 신부는 웃었다. 그리고 웃음 끝에 진지해졌다.

“이천 년 전, 별을 따라온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점성술사들이었지요. 하늘을 읽는 이방의 술사들. 교회는 그들을 쫓아내지 않고 제일 먼저 아기 앞에 세웠습니다.”

노인은 운학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진인께서는 늦게 오신 게 아닙니다. 그저 길이 조금 머셨을 뿐.”

운학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밤하늘의 한 점을 오래 바라보았다. 별이 울었다. 장, 장, 장, 단. 그 가락이 그날 밤에는 어쩐지, 재촉이 아니라 응답처럼 들렸다.

세례식은 아침 미사 뒤에 조촐하게 치러졌다. 회중은 스무 명 남짓. 운학은 세례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최 신부의 늙은 손이 은주전자를 기울였다.

물이 이마에 닿는 순간.

운학은 제 안의 도력이 어찌 되는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백이십일 년 쌓은 것이 물 한 줄기에 씻겨 나간대도 어쩔 수 없다고 각오한 터였다. 물은 이마를 타고 흘렀다. 도력은—

씻겨 나가지 않았다. 다만 물을 맞은 화롯불처럼 한 번 크게 일렁이더니, 이내 전보다 고요하게, 더 깊은 곳에서 타올랐다. 두 우물은 같은 수맥이었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물이 물을 알아본 것이거나.

“안드레아.”

최 신부가 그의 세례명을 불렀다. 제일 먼저 부름받아 제일 먼저 따라나선 어부의 이름이었다.

“평화가 함께하기를.”

박수가 나직이 일었다. 운학은 일어서서 젖은 이마를 훔치지 않은 채 회중을 향해 몸을 돌렸고—

기감이 바늘처럼 곤두섰다.

회중석 너머, 성당 뒤편 어둑한 기둥 곁. 검은 코트의 인물 하나가 서 있었다. 얼굴은 기둥 그늘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슴께로 들어 올린 손안에서 작은 렌즈가 이쪽을 향해 있었고, 셔터 소리는 오르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운학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인물은 이미 몸을 돌려 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었다. 쫓기는 자의 등이 아니라, 볼 것을 다 본 자의 등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겨울 햇빛이 길게 들이쳤다가, 문이 닫히며 끊겼다.